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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미국 횡단 기차여행 (암트랙 Amtrak)

by 한찬우 2024. 2. 28.

기간: 23년 12월 25~28일 / 24년 1월 12~13일
장소: 암트랙 기차여행
1. 캘리포니아 제퍼 노선(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 일대)

2. 사우스웨스트 치프 노선(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캔자스)
 
내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미국 중부 지방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면, 거주 위치상 동부든 서부든 다 자유롭게 갈 수 있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거짓말에 가깝다. 이곳에서 뉴욕에 가는 것과 LA에서 뉴욕에 가는 것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어쩌면 후자가 더 경제적일 수 있겠다. LA와 뉴욕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는 늘 타는 사람이 많다 보니 실제 거리는 더 멀어도 항공권은 대부분 더 저렴하다. 거리보다는 수요량과 인프라가 비행기 삯을 형성한다. 내가 바라본 '하늘길'의 역설이다.
이와 다르게 '땅 위의 길'은 정직한 맛이 있다. 거리가 먼 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가격도 올라간다. 가까운 만큼 시간은 적당히 줄어든다. 그러니 비교적 한적한 중부에 사는 내가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비행기보단 육로를 통한 수단들이다. 기차를 타며 국토를 밟고 지난다는 이 느낌이, 놓치는 건 하나 없이 다 지나간다는 꾸밈없는 기분이 참 좋다. 
 
수십 시간을 적당한 속도로 달리며 눈밭, 사막, 캐니언 등 온갖 지형과 기후를 큰 유리창 밖 너머로 보여준다. 아예 ‘감상 전용 칸’이 따로 있다. 심지어 콜로라도와 유타 사이에서 유명한 절경이 펼쳐지는데, 이 구간에선 2시간 간격으로 대기 줄과 자리를 바꿔 앉는 규칙도 있을 정도다. 시시각각 바뀌는 기이한 대자연에 놀라워하다 보면 기차는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한다.
이 육로 여행은 바깥 풍경만 곱씹게 하는 건 아니다. 열차 칸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당신은 그간 비행기를 타면서 옆 승객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옆자리 사람이 꼭 타길 바랐던 적은 있는가. 십몇 년 전 탄 비행기에서 악취를 풍긴 승객의 잔상이 남아있는 것 말고는 내게 기억이 잘 없다.
이번 여행에서 신기하게도 옆자리 동행객들의 특징이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 탄 승객의 행운치고는 여정 내내 지속됐다. 덴버로 같이 향하던 할아버지, 유타로 가던 독일인 여자 여행객. 시작 역에서 종착 역까지 횡단하는 한국인 중년 부부. 캘리포니아에서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유쾌한 친구. 그들과 짧지 않게 대화를 나눴고 친해졌고, 또 각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또 그들이 승강장에 내릴 때쯤 되면 다음번 내 옆자리엔 누가 올지 괜히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열차가 선사하는 자연과 사람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중에 기차만 타러 다시 이곳에 와도 되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십시간을 달리는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밤이 찾아온다. 본인만의 편한 자세로 잠을 청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