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지금 땡스기빙(추수감사절) 주간입니다.
목요일이 메인 데이이고, 앞뒤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주말까지 더하면 5일간 쉽니다.
지난달에는 학교 자체적으로 Fall Break 기간이 있어 4일 정도 쉬었는데, 땡스기빙데이는 이곳 사람들에게 더 크고 중요한 날인 것 같습니다. 학교 수업은 물론, 교내 식당과 체육관 같은 기본 시설도 이 기간만큼은 문을 닫습니다.
이번 연휴가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가 보고 느낀 '땡스기빙데이'에 대해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추석과 이곳의 땡스기빙데이
화요일, 목요일 총 두 차례 땡스기빙 행사에 참여했다. 당연히 땡스기빙데이를 한번 즐기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나는 현지 문화를 최대한 많이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두 번 다 가기로 했다. 화요일 행사는 학교와 인근 교회가 주최하여 100명이 넘는 국제 학생들이 주로 모인 거대한 행사였다. 그리고 오늘(목요일) 참여한 행사는 일반 미국인 가정집에 초대받아 진행된 다소 소규모 행사였다. 아마, 올해 땡스기빙 식사를 나처럼 두 번 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첫 행사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땡스기빙데이가 처음일 나와 같은 학생들을 위해, 친절하게 이 연휴의 유래, 문화 등을 설명해 주는 시간도 있었다. 터키(칠면조 고기)를 왜 먹게 됐는지, 식사 이후엔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빨리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땡스기빙데이 하면 터키가 떠오르는 게 대부분일 터다. 터키 외에는 그냥 매일 먹는 음식을 먹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빵이나 패티, 맥앤치즈 이런 것들. 편협한 생각이었을까. 준비된 음식들을 쭉 둘러보니 생소한 게 많이 보였다. 터키 말고도 Green Bean Casserole(그린 빈 요리), Sweet Potato Cassderole(고구마 요리), Stuffing(빵 조각으로 만든 요리).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인 매쉬포테이토 등이 있었다. 디저트로는 크랜베리 소스를 바른 빵과 애플파이나 펌킨 파이도 있었다. 이 음식들이 우리로 치면 전이나 잡채 같은 '명절 음식'인 것이다. 오 이곳도, 이날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 있구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좀 편협했다. 그렇게 지난 추석에 먹지 못했던 명절 음식을 이곳의 명절 음식들로 두세 접시 먹었다. 새로 접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두 번째 행사에는 좀 더 현지식으로 소규모로 열렸다. 정확히는 일반 미국 가정집에 나를 비롯한 학생 4명이 초대되어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Charlie 씨의 가족 행사였다. 당연히 가족 행사니 한 많아 봤자 열댓 명 모이겠거니 싶었다. 물어보니 20~25명 정도 모일 거라 말했다. 가족이나 혈연에 대한 유대가 한국이 훨씬 더 큰 줄 알았는데, 이곳도 이런 행사에는 가족들이 다 모이는구나. 찰리 씨 가족이 유독 끈끈한 걸 수도 있지만,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작은 한 집으로 스무 명 넘게 모여든다는 사실은 충분히 신기하고도 남았다.
다양한 메뉴들이 거의 다 준비되었을 때쯤, 찰리 씨 가족들은 거실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빙 둘러섰다. 자신을 소개하고, 내년에 가고 싶은 여행지 하나씩 말하는 시간이었다. 찰리 씨 부부를 시작으로, 찰리 씨의 형제와 그 가족들, 찰리 씨의 자녀와 또 그 가족들 주르륵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였지만, 또 누구는 boyfriend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는 베니스에 가고 싶다고 했고 또 누구는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자리에서 이런 가벼운 주제로도 이야길 시작할 수 있구나. 그러니까, 나를 비롯한 학생들을 이런 '가족 행사'에 초대할 수 있는 거겠지. 우리나라에 빗대어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네 명절에는 주로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 가족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이곳은 좀 달랐다. 처음 보는 대학생들을 명절 기간에 자기 집에 들일 정도로 개방적이구나. Zac은 Boyfriend 자격으로, 이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고, 난 KU 학생으로서 이곳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이 환영받았다.
'추수 감사'라는 대강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해서 추석과 땡스기빙데이는 비슷한 역할로 인식되는데, 내부의 모습과 문화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자기소개와 여행지 소개가 끝나고, 거대한 식사가 시작됐다.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고 또 다 같이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리하는 과정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둘 다 번거로울 텐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우리나라는 요리할 때만큼이나 치울 때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설거지나 잔반들을 치우기가 참 골치 아프다. 이곳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썩 없어 보인다. 그냥 봉투 하나에 싸그리 버리면 된다. 일회용 접시부터 플라스틱 수저, 먹다 남은 터키까지 한 번에 쓱. 간편함과 이기심으로 시작됐을 이 문화가 그래도, 땡스기빙데이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게 사실일 거다. 한꺼번에 버리는 이 문화가 무식하다고까지 판단되지만 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이런 편리함에 익숙해 보인다.
거대한 식사를 마친 뒤, 앞마당에서 농구, 축구, 디스크골프 등을 즐긴다. 지난번 봤던 미국 전통 놀이 '콘 홀'같은 건 오늘은 없다. 좀 놀다 보니 슬슬 집에 가봐야겠다는 가족들이 생긴다. 달려왔을 먼 길을 감안하면 다소 빠르게 가는 것 같지만, 남은 가족들과 인사를 한 뒤 휙 가버린다. 연휴는 총 닷새지만 땡스기빙데이의 다같이 모인 시간은 두세 시간이 전부인 셈이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충분히 행복하고 따뜻한 땡스기빙 식사를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별다른 스트레스나 명절 후유증 같은 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겐 이거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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