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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NCAA

[현장 일기] Late night in the Phog_Allen Fieldhouse_231006

by 한찬우 2023. 10. 8.
Late night in the Phog_231006
Late night in the Phog_231006

고등학교 영어 공부를 한창 할 때 overwhelm이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형태도 좀 특이했고 발음은 더욱 어려웠다. 아니지, 독특한 탓에 단번에 외운 것 같기도 하고. 분명한 건 암기는 했어도 여전히 익숙지 않고 낯설었다. 좀 더 빨리 오늘의 기분을 느꼈다면 이 단어를 피부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경기장’ 앨런 필드 하우스(Allen Field House)에선 시즌 출정식 행사가 오늘 열렸다. late night in the phog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진행되는 유서 깊은 교내 연례행사다. 선수단 소개와 연습게임, 각종 팬 이벤트와 가수 초청 행사까지. 작년엔 샤킬 오닐이 와서 디제잉을 했고 이번엔 플로 라이다가 왔다.

무료지만, 티켓은 꼭 있어야 한다. 16,000석밖에 되지 않은(그러니까 3,4만명이 되는 풋볼 경기장에 비하면 작은 것이니) 농구 경기장이니 경쟁이 당연히 있다.

9월 한 달간 KU 풋볼을 3경기 정도 봤다. 경기장의 사이즈와 학생 응원석의 열기, 그리고 승리 시에 그 분위기는 매번 최고치를 경신했다. 게다가 NFL 캔자스시티 치프스 경기와 MLS 애틀랜타의 경기를 보면서, 미국운 스케일에 좀 적응한 줄 알았다. 적응에서 오는 안정감과 지루함을 9월 말에 조금 느꼈다. 고작 몇 경기 본 게 전부인데, 이 정도면 맛은 다 본 줄 알았다. 

Late night in the Phog_231006
Late night in the Phog_231006

와, 그런데 농구 경기장에 들어가니 그간 분위기와 또 달랐다. 이 부분은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정확히는, 앨런 필드 하우스에 입장한 뒤 복도에 들어선 순간부터였다. 네이스미스 박사를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선수와 감독으로 이루어진 명예의 전당을 보았고, 그보다 더 많은 우승컵과 기념물을 목도했다. 코트를 마주한 순간도 마찬가지. 이곳이면 정말 농구의 박물관 내지 성지일 수 있겠구나. 이미 역사가 주는 압도감에 사로잡힌 지 오래였다. 짧은 두 달 동안 만난 그 어떤 KU건물보다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스케일은 풋볼 경기장이 몇 배 클지 몰라도, 아주 잘 쓰여진 ‘역사책’ 같은 이 경기장을 이기진 못했다. 실내 경기장이라 응원도 대단했다. 학생들 함성은 이쪽 벽을 튕기고 저쪽 벽을 튕긴 뒤 결국 내 두 귀로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 시간 반을 사진 정리했다. 앉아만 있었다.  
영어 공부, 과제, 독서 같은 할 것들이 남아있었지만, 아직 남은 흥분을 진정해야 했다. 또, 오늘 저녁의 기분과 경험을 기록할 필요도 있었다. 남은 할 일들은 내일 해도 충분했다.

Late night in the Phog_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