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훌쩍 다가왔다.
8월 6일에 미국을 향해 출국했는데 꼬박 3달이 지났다.
이젠 생활에 있어서 어색함보다 익숙함이 더욱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수업도, 교내 알바도, 주로 어울리는 친구들도 이제 얼추 내 바운더리가 정해졌다.
내가 십수년간 만들어온 comfort zone을 벗어나고자 큰 맘먹고 교환학생 생활을 결심했다.
인천과 서울 일대라는 둥지를 한 번쯤은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세 달이 지난 지금,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모든게 새로웠던 캔자스의 로렌스는 어느덧 내게 또 하나의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때론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여기서조차 또 다른 동네로 바람을 쐬거나, 여행을 하려고 한다. 캔자스시티만 해도 이곳과 전혀 다른 동네였고, 애틀랜타와 라스베가스는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다행히도 이곳 로렌스에서도 학교 안팎의 이벤트들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여러 Holiday, 새롭게 만나는 친구들, 수업에서의 게스트 강연 등 익숙해질만하면 새로운 충격들이 끊임없이 다가온다. 감사하다.
10월 말에는 NBA 프로 리그가 시작을 했고, 11월엔 본격적인 농구 시즌이 다가온다. 어쩌면 내 교환학생 생활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볼 수 있는 농구.
이젠 기숙사에서 5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체육관에서 내로라하는 대학농구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11월 1일, Fort Hays State 대학과의 exibition 경기가 있었고, 오늘 11월 6일 North Carolina Central 대학과의 시즌 공식 첫 경기가 치러졌다.
간단히 두 경기를 나누어 감상과 충격들을 남겨본다.
1. Fort Hays State University, Tigers
홈: 캔자스
어웨이: 포트 헤이스 스테이트 타이거스 (D-II 디비전)
경기장: 앨런 필드 하우스
스코어: 73-55
10월 초에 열린 출정식(레잇 나잇 인 더 포그) 이후 한 달 만에 열린 농구 행사다. 이젠 다른 행사가 아니라 본격적인 농구 경기로 돌아왔다. 공식 게임은 아니고 익지비션 게임이지만(연습 경기나 기금 모금 행사 등을 위한 경기를 시즌 전에 치름) 미국에서 첫 농구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설렜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경기장 타이틀을 갖고 있는 앨런 필드하우스에서 아주 싼 값에 볼 수 있다니. (농구, 풋볼 경기를 다 볼 수 있는 시즌권이 $175다. NBA 경기 값을 생각하면 한두 경기면 손익을 넘긴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유서 깊은 경기장이 내 기숙사 코앞에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어쩌면 영광이다.
* exhibition game : an unofficial game played under regular game conditions between professional teams, usually as a part of preseason training or as a fund-raising event.
관용이, 만샤, 지원이, 펄과 함께 보러 갔고 학생 구역에 앉아 경기 내내 거의 서있다시피 농구를 봤다. 나는 관용이랑 떠드느라 바빠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길 많이 못햇다. 이 셋도 경기를 잘 즐겼는지는 모르겠다.
상대의 객관적인 전력이 우리랑 많이 차이 나서, 경기를 계속해서 리드해 나갔다. 특히 이번에 트랜스퍼 온 헌터 디킨슨(센터, 등번호 1번)의 높이를 제어할 상대팀 선수가 거의 없었다. 계속해서 풋백득점을 추가했다.
언젠가 경기에 갈 때는, 엄청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학생구역 가장 앞자리에 자리 잡아봐도 괜찮을 것 같다. 응원 열기가 가장 뜨거운 명당에서 한 번쯤은 뛰어보고 싶다. 어쩌면 대문짝만 한 사진이 찍힐 수도 있고.
어쨌든, 지난 10월 출정식에서 선수들이 공만 튀기는 것만 봐도 설레고, '농구의 본고장'임을 체감했었다. 이번 경기도 역시 뜨거웠고 신이 났지만, 그때만큼의 충격이나 압도감은 아니었다. 사진도 그때처럼 몇십 장씩 찍지 않았다. 이젠 농구가 그만큼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젠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당장 오늘내일 경기를 찾아 갈 수 있는, 학교 생활의 일부가 됐다.
2. North Carolina Central University, Eagles
홈: 캔자스
어웨이: 노스캐롤라이나 센트럴 이글스 (D-I 디비전)
경기장: 앨런 필드 하우스
스코어: 99:56
선발 라인업: G DaJuan Harris Jr., Elmarko Jackson / F Kevin McCullar Jr., KJ Adams / C Hunter Dickinson
지난 경기보다 더 많은 관중이 찾았다. 늦게 입장을 했더니 이미 학생구역은 꽉 차있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반석 빈 곳에 앉아 경기를 봤다. 일반석은 지정좌석제다 보니 사람이 오면 비켜줘야 한다. 나도 똑같이 티켓을 내고 들어온 건데,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에 계속 노심초사하느라 경기 초반은 집중을 잘하지 못했다. 불상사를 피하고 농구를 맘 편히 즐기기 위해선 학생구역에 일찍 들어와야겠다.
상대는 D-1 스쿨 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경기보다 더 스코어가 벌어졌다. 초반엔 트리플 스코어까지 날 정도로 우리가 압도적인 전반을 보냈다. 헌터 디킨슨, 케빈 맥컬러 주니어가 원투펀치로 스코어를 벌렸고, 팀버레이크와 KJ 아담스도 쏠쏠한 득점을 해줬다. 무엇보다, 0 득점 10어시를 기록한 우리 팀 포인트가드 다완 해리스 주니어도 1번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잘해주었다. 후반전엔 살짝 삐끗도 했지만 이미 스코어가 벌어진 뒤였다. 세 자릿수 득점을 호기롭게 노렸지만 아쉽게 1점이 부족했다. 99-57 완승.
응원.
학생 구역은 정말 열기가 어마어마하다. 상대 선수 한 명이 경기 초반 에어볼을 던졌는데, 이후 그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에어볼"챈트가 쏟아졌다. 내가 선수였다면 기가 죽어 더 이상 슈팅을 못 던질 것 같았다.
3점을 성공시켰거나 앤드원 플레이를 했을 때, 혹은 반대로 상대가 자유투를 던지거나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이 나올 때 학생구역은 우리 팀의 에너지를 불어다 주었다.
한편, 일반석에 앉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갔다. 주로 아저씨-아주머니나 할아버지-할머니 나이대가 대부분이다. 궁금하다. 이들은 언제부터 캔자스 제이호크스와 인연인 걸까. KU의 알럼니? 로렌스 동네 주민? 혹은 자녀로부터? 인연의 세월과 연유에 대해 궁금해진다. 이 캔자스대학농구팀이 지역(캔자스)과 대학(KU) 중에 어디에 더욱 팬베이스를 두고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를 생각한다면, 안암동에 살고 있다고 고대 농구팀을 응원하는 동네 주민은 거의 없을 거다. 고연전에 신촌 주민이 응원하러 가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대학농구는 지역보단 '대학'에 거의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과연 이곳은 어떨까. 나중에 루크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다음.
다음 홈경기들은 11/10, 11/28, 12/1에 예정되어 있다. 그때도 역시, 캔자스 로고 티셔츠를 입은 군중들과 함께 열기를 공유해야겠다.
이렇게 점차 본고장의 농구를 두눈으로 보고 두 발로 뛰며 다른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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