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여행기>
워싱턴 2일 차
한국 시각으로는 어제가 설날이었다.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지난 8월 이후 새로고침 되지 못한 한국 소식, 가족 소식 이야기도 들었다. 주로 난 들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못다 한 얘길 했다.
엄마는 책상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더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가 새벽 두 시였다.
아침에 느껴지는 어젯밤의 미처 해소되지 못한 피로는 당연했다.
9시에 겨우 밖을 나와 졸린 몸을 이끌고 미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워싱턴은...
뉴욕과 보스턴을 연달아 다녀온 내게 워싱턴은 모호하게 느껴진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꼽자니 뉴욕의 한 블록만도 못한 복작거림이다. 이곳의 데시벨은 뉴욕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역사와 고풍스런 분위기를 꼽자니 1600년대부터 시작된 보스턴의 이야기가 더욱 그 깊이를 오래 하는 것 같다.
미국으로 첫 이주 온 지역이 보스턴이었다면 이곳은 그냥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진 곳이다.
외부인으로선 이주민들의 이곳으로 떠나온 이유와 이곳에서 터전을 일궈 나간 보스턴의 이야기가 더 재밌게 느껴졌다.
워싱턴의 이야기는 이주민/개척자들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미국이란 나라를 만들고자 했는지였다.
다만 나는 그 가치에 경도되지 않고자 '좀 지나치게' 경계하며 듣다 보니 흥미가 썩 생기진 않았다.
그러니 뉴욕과 보스턴에 비해 워싱턴 DC라고 하는 이곳은 옛것도 아니고 현대적인 것도 아닌 그저 행정/정치적 역할을 하는 '있어야만 하는 도시'로 다가온다.
다소 따분하게 느껴진다. 과천이나 세종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엄마 말마따나 미 국회의사당, 의회 도서관, 각종 사무소 등 흰색 혹은 상아색의 건물들의 규모는 우릴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게 다다. 더 깊은 감동은 많이 없다.
피곤한 탓인지 오늘은 일찍 하룰 마무리하고자 했다.
슈퍼마켓 '트레이더 조'에 가서 샐러드와 주전부리를 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엄마와 꽤 진솔한 이야길 했다. 그 후 쭉 뒹굴댔다.
엄마는 내게 말한다.
이번 여행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우리 둘이 같이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가족서 여행은 다니겠지만 이번 같은 단둘의 동행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겠다고.
엄마랑 나랑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임과 동시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지 싶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는 미래의 연인, 배우자, 가족과 함께 다닐 일이 있을 거고, 그렇다면 거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인생은 정말이지 유한하다.
매일매일이 비슷한 것 같고, 요 몇년간 스무 살 초반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 같다가도 돌이켜보면 ‘똑같지 않은’ 많은 시간이 훌쩍 흘러있다.
앞으로/다음에도/쭉 이런 말들은 가끔이곤 인생에 적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더 방점을 두어야할까.
엄마와 단둘이 바다 멀리 해외의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는 것?
혹은 엄마랑 단둘이 저 멀리 오랫동안 떠나보는 여행은 이번이 아마 마지막일 거라는 것?
양면이 존재하기에 더욱 특별하고 뜻깊게 다가온다.
이 순간을 온전히 더 즐겨야겠다고 더욱 확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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